절벽 건너기


실제로 가능한 건지 모르겠습니다...

by 좌파논객 | 2008/07/03 23:04 | 잡담... | 트랙백 | 덧글(2)

유리


33세의 청년 수도승 유리. 그가 습기없는 땅, 건조한 불모지, 관념의 유토피아
유리로 들어간다. 죽음이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받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의 상태로 뛰어간다. 교만으로 가득찬 존자승, 편견으로 뒤틀린 애꾸승.
유리는 그들을 살해하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수행을 시작한다. 이런 유리의 살해
행위를 훔쳐보는 촛불승은 금기를 거부하는 이 젊은 청년의 새로운 수행을 호기
심과 질투어린 눈으로 지켜본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여자(누이: 가족 개념이 아닌 단지 호칭)를 안아보는 유리.
그는 몸을 파는 것으로 수행을 하는 누이와 광활한 유리의 땅에서 혼례를 올린다.
그들은 육체를 통해 영혼의 결합에 이르기를 갈구한다. 정사를 통해 사랑보다 더한
죽음을 이해하려 한다. 사랑, 그것은 또다른 죽음의 한 연구. 이후 유리의 수행은
타락하고 부패한 땅 읍내지역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그곳에선 예상치 못한 위험이 기다리고 있는데. 읍내지역의 다양한 인간들,
장로, 목사 딸, 요니. 이들과 맞부딪히며 화두를 풀기위한 유리의 거침없는 수행은
지속된다. 그러나 끝내 살인의 죄목으로 유리에겐 잔인한 사형집행이 예고된다.
사형집행자는 같은 수도자로서 그를 질투해 마지않던 촛불승이 되는데.

출처: 네이버 영화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7195

by 좌파논객 | 2008/06/30 23:28 | 예술및문화 | 트랙백 | 덧글(1)

궤도


어릴 적 사고로 두 팔을 잃은 철수는 산나물 채취로 연명하며,
홀로 고요한 나날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벙어리 여인
향숙이 나타나 그의 집에 머물게 되고, 초라하고 보잘것없던 외
톨이 철수의 집은 그녀의 손길로 어느새 아늑한 온기가 스민다.
말이 닿지 못하고, 손이 닿을 수 없는 두 사람은 그 침묵의 공간
속에서 서로에게 교감을 느끼지만, 철수는 향숙에게 드리워진
죽은 제 어미의 그림자 때문에 혼란에 빠진다. 향숙과의 나날은
점점 사랑으로, 사랑은 자책감으로, 자책감은 자멸로 치닫고 마는데…
 
출처: 씨네21
http://www.cine21.com/Movies/Mov_Movie/movie_detail.php?s=base&id=23816

by 좌파논객 | 2008/06/30 23:22 | 예술및문화 | 트랙백 | 덧글(1)

절대우위, 비교우위(自)

만약 개인이나 국가와 같은 어떤 경제 주체가 다른 주체보다 더 적은
자원으로 더 많은 재화를 생산할 수 있다면, 이를 가리켜 우위에 있다
는 표현을 씁니다. 이러한 우위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이것이 이
글에서 소개할 절대우위와 비교우위입니다.

절대우위란 단순히 양 그자체로 우위에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갑돌이와 갑순이가 각자 자신의 노동력을 들여서 맥주와 막걸리
를 만든다고 했을 때 갑돌이가 양적으로 더 적은 노동력을 들여서 더
많은 맥주와 막걸리를 생산할 수 있다면 갑돌이가 갑순이에 비해 절대
우위의 상태에 있게 되는 겁니다.

이에 비해 비교우위란 어느 한쪽이 생산성이 높은 재화에 자신의 역량
을 집중했을 때, 다른 한쪽이 상대방이 집중하지 않는 재화를, 상대방의
집중생산을 보상할 수 있을 정도의 높은 생산성으로 생산할 때 점할 수
있는 우위를 뜻합니다.

아까의 예에서 갑돌이가 자신의 모든 노동력을 한 재화에 발휘했을 때
맥주보다 막걸리가 생산량이 많고 같은 방식으로 따져서 갑순이의 경우
맥주의 생산량이 더 많다 했을 때, 각자가 특정제품에 집중생산할 때가
그렇지 않을 때보다 둘의 생산량 총합이 더욱 높다면 갑돌이는 막걸리에
비교우위가 있고 갑순이는 맥주에 비교우위가 있는 것입니다.

좀더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 다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갑돌이가 변호
사라고 가정합시다. 갑돌이는 변호사로서 변론도 잘 하고 문서도 작성
을 잘 합니다. 이에 비해 갑순이는 평범한 대졸자로서 문서만 작성할
줄 압니다. 갑돌이는 갑순이보다 더 적은 시간을 들여 더 많은 문서를
타이핑할 수 있지만 문서를 타이핑할 시간에 조금이라도 더 많은 소송
을 맡는다면 돈을 더 벌 수 있습니다. 비록 갑순이가 갑돌이보다 타이핑
을 잘하지 못하지만, 그렇게 갑돌이가 추가로 번 소득 중에서 갑순이에
게 타이핑 수당을 주고도 남는 게 있다면 갑순이는 타이핑에서 비교우위
가 있는 것이며, 갑돌이는 갑순이를 비서로 고용하여 자신은 변론에 집중
하고 갑순이는 타이핑을 열심히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어느 개인이나 국가가 다른 개인이나 국가보다 모든 면에서
능력이 뒤쳐진다고 하더라도 각자 분야에서 비교우위가 있어서 각자
자신의 분야에 열중하여 만든 재화를 서로 교환한다면, 교환하지 않고
각자 여러 물건을 생산하는 것보다 더 풍부한 재화를 생산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19세기 영국의 경제학자인 리카도가 주장한 비교우위론이며
개인 차원에선 거래가, 국가 차원에서 무역이 일어날 수 있는 요인들 중에
하나인 것입니다.

by 좌파논객 | 2008/06/27 21:52 | 경제이론 | 트랙백 | 덧글(0)

불확실성 기피(自)

위험선호, 위험기피(自)

여러분이 어떤 내기를 한다고 칩시다. 여러분에겐 두 개의 항아리가
제시되고 여러분은 두 항아리 중 하나를 골라야 합니다. 한 항아리에
는 검은 공이 10개 하얀 공이 10개 들어가 있으며 다른 항아리에는
검은 공과 흰 공 함쳐 20개가 들어있지만 검은 공과 흰 공의 구체적인
배합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두 항아리 중 하나를 골라 그 항아리에
서 검은 공을 뽑으면 만원을 얻고 흰공을 뽑으면 만원을 잃는다고 합
시다. 여러분은 어떤 항아리를 선택하시겠습니까?

실제로 엘즈버그라는 수리경제학자가 이 실험을 했습니다. 실험 결과
대부분의 사람이 검은 공과 흰공의 배합이 알려진 항아리를 택했다고
합니다. 즉 사람들은 불확실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 확률을 알 수 없는
상황보다 확률이라도 알 수 있는 상황을 선호한다는 겁니다. 이를 가
리켜 '엘즈버그의 역설'이라 합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불확실한 상황보다는 확실한 상황을 선호하며 같은
불확실한 상황이라도 확률이 주어진 상황을 그렇지 않은 상황보다 더욱
선호합니다.

사실 우리 주변의 불확실한 상황 중에는 확률이 부여된 상황보다 확률
이 부여되지 않은 상황이 훨씬 많습니다.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확률을
정확하게 추정할 수 없는 사례가 훨씬 많습니다.

누군가 확률이 어쩌고 할 때 여러분들은 이 점을 유의하셔야 합니다.
'과연 저 확률의 확률은 얼마나 될까? 확률을 추정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연구를 한 것일까?'


사족1: 용어를 엄밀히 말하자면 경제학에선 확률이 부여된 불확실성을
위험(risk)이라 하고 확률을 알 수 없는 불확실성을 불확실성(uncertainty)
이라고 합니다.

사족2: 아까 언급한 엘즈버그라는 경제학자는 한때 촉망받던 미국의
국방연구 종사자였으나 베트남 전쟁의 비참함을 목도한 후 반전운동
으로 입장을 선회한 인물입니다..

by 좌파논객 | 2008/06/26 22:38 | 경제이론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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